행운의 수 '홀인원' :: 2006/04/05 19:27

행운은 요행을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찾아온다. 과장한다고
만들어지거나 커지지도 않는다. 행운을 얻었다면 분수에 맞게 기념하자



아온 내력으로 느끼기에 절기 중의 봄이란 차곡차곡 빛깔의 층계를 딛고 여름 더위로 나아가는 계절인 듯싶다.

그러나 올해 봄은 일찌감치 초여름 날씨였다가 또 한기까지 들게 하는 그런 뒤죽박죽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지구의 온난화 덕분인지 한꺼번에 꽃 빛을 다 드러내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한참을 넋 놓게 했다. 오히려 금년 4월 18일(일)은 봄날로 따져 좀 늦은 감이 있는 듯 싶었다. 필드는 아직도 떡밥(모래뿌림)으로 잔디의 순이 엎디어 있어서 최상의 컨디션은 아닌 것 같았다. 급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우리도 마음의 단장을 하고 안성의 양성면에 있는 파인크리크로 향했다.

일행은 지인 둘과 필자 이렇게 셋이었다. 이 가운데서 실력이 가장 서툰 필자는 어디서건 대우를 받아 이날도 오너의 앞자리에서 첫 티샷을 감행했다. 긴 겨울나기로 꽁꽁 굳어버린 어깨며 팔다리와 허리를 두서너 번의 드라이버 연습만으론 풀 수가 없었던지 거듭 실수를 했다. 지인들이 실수를 눈감아주는 사이 세 번째의 짧은 홀(파 3)에 이르렀다. 이곳의 크리크 코스 3번 홀은 내가 다녀본 곳 중에선 비교적 짧은, 그것도 이날따라 그린 앞켠에 깃발을 꽂아두었기에 쉽게 올릴 수가 있었다. 나로선 처음 경험한 근착지점이었기에 자못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인 중 한 명이 내 뒤를 이어 아이언으로 볼을 가볍게 두드렸다. 내가 보기에 그린의 가장자리에 떨어진 그의 볼이 깃발 가까이로 뒤뚱대고 가더니 슬쩍 자취를 감추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고 또 나로선 그런 경험이 없었던지라 멍한 찰나에 캐디가 소리를 쳤다. 우리 3인은 그 소리에 놀라 덩달아 소리를 질렀다. ‘홀인원’. 얘기로만 듣던 기적을 나는 준비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날 종일 나는 그 장면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홀인원’의 당사자인 지인은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지 과거 용평에서 경험했던 순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린에 당도한 볼은 기세도 좋게 굴러 바로 홀 앞에 당도하자 왠지 낭떠러지에 기가 질렸는지 호기로움을 그만 버리더라는 것이다.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라도 혹은 땅의 엉뚱한 움직임이라도 왔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캐디는 물론 일행과 함께 떨어질 순간을 한참이나 기다렸으나 끝내 소식이 없어 큰 실망을 하고 물러났던 때의 기억이 새삼스럽다고 술회했다.

그런 얘기는 참 많이도 들어왔다. 어느 눈이 오는 날의 겨울골프에서 얻은 고달픔은 미친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넌센스에 다름 아닐 터이다. 그날따라 준비가 안 되어 다른 사람과는 달리 흰 볼을 칠 수밖에 없어 티샷을 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볼이 어디로 튀었는지 찾을 도리가 없어 슬그머니 예비 볼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 세컨을 하고, 이어 그린에 가보니 홀 안에 흰 볼 하나가 먼저 와서 곱게 엎디어 있었다는….
이런 낭패는 쉴 틈 없이 듣는 비정직의 우스개에 속한다. 십수 년의 경륜을 가진 내 동행 두 사람과 몇 년 밖에 되지 않는 필자까지 합쳐 단 한 번의 이런 요행도 있지 않았으니 그날은 분명 진기록에 속하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물론 그 누구든 ‘홀인원’을 요행으로 친다. 요행이란 뜻밖의 일을 가리킨다. 느닷없는 복을 바라는 행운의 수를 의미한다. 만일 이런 말을 대학의 입학이나 직장의 시험에 붙여 말한다면 욕되는 경우도 있다. 직장에서의 승진이 요행으로 된다면 열심과 노력 따위는 도외시되기 때문에 모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요행으로 그 기념의 나무들이 골프장마다 가득하다. 이름패도 큼직하게 걸려있다. 그러나 우린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증인인 우리들의 분수에 알맞은 작은 기념품으로 그를 축하했다.
서울경제골프매거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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