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_하나은행 김승유회장 :: 2006/06/12 13:05
김승유(63.사진) 하나은행 회장이 하나은행장이 된 건 1997년 2월 26일이었다. 축하 회식 후 늦은 귀가 중 그의 발길은 서울의 한 어르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었다 나온 듯한 표정의 팔십 노인은 손수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 한 잔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김 회장은 그대로 했다. '언제든 사표 낼 각오로 최선을 다하라'는 속뜻을 이해한 것이다. 어르신의 이름은 김정호. 65년 11월, 김 회장이 직장 생활의 첫 발을 디딘 한일은행(나중에 우리은행으로 통합) 서울 남대문지점의 지점장이었다.
"카리스마가 대단했지요. 직원 훈련을 매섭게 시켜 그 지점이 한일은행 사관학교란 말을 들을 정도였죠. 주판 못 놓는 대졸 신입사원은 오전 7시에 출근해 한 시간씩 주산 연습을 시켰어요. 일과 후엔 대리 선배들의 실무 강의를 듣게 했지요." 김 지점장은 저녁 강좌 때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시종(始終)을 지켜봤다. 강사로 나선 대리들로선 식은땀 날 일이었다. 헌 돈 가려내기 같은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출근하고 밤 늦게 퇴근하는 지점장을 불편해 하는 이들은 "지독한 양반"이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회사와 직원에 대한 애정으로 여긴 것이다. "'은행원은 정직이 생명'이란 말씀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했어요. 실적이 좋아 회사에서 포상금이 나오면 일일이 직원들에게 나눠주며 당부하곤 했지요. '허투루 쓰지 말고 꼭 저축해라'고요."
1년 뒤 김 지점장은 전근을 갔다. 김 회장은 68년 사직서를 낸 뒤 미 남가주대 경영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역만리에서도 옛 상사를 잊지 못하고 엽서를 보내자 정갈한 글씨로 당부 말씀을 적은 답신이 날아왔다.
김 지점장은 76년 5월부터 4년간 한일은행장을 지냈다. 89세인 지금도 정정하다. 김 회장은 그를 일러 "금융인으로서의 내 삶에 뿌리를 내려 준 분"이라 했다. "전에 그러시데요. 지점에 가면 금고를 열어 보라고. 일목요연하게 정돈이 잘 돼 있으면 지점 운영도 건실하다고요. 정말 그렇더군요. 또 한 수 배운 거지요, 허허."
중앙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