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보다는 공부가 쉽더라_안철수 :: 2006/04/25 16:31

안철수 안철수연구소(053800) 이사회 의장은 25일 서울 본사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학업에만 최선을 다하면서 새 창업이나 교수직, 벤처 캐피탈리스트 등의 길 중에서 차후 진로를 결정하겠다"며 1년간 미국에서 머물렀던 소회를 밝혔다.
안 의장은 "벤처 기업인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벤처 캐피탈을 개선하는 것을 도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벤처기업들을 도와주고 조언하는 역할을 꼭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러브콜에 대해서는 "능력이 부족하고 과분한 제안이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지난해 미국으로 건너갔던 안 의장은 다음달부터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와튼 스쿨 최고경영자 과정(Executive MBA)에서 경영수업을 쌓을 예정이다. 그는 이사회 참석과 고려대 강연 등을 위해 6박 7일 일정으로 23일 귀국했다.
다음은 안철수 의장과의 일문일답.
- 1년동안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것이 가장 불편했다. 특히 미국 학생들은 어떤 사안이 있으면 그 사안에 대해서만 집중하면 되지만 영어에 서툰 경우는 (생각을 영어로 정리하는) 한 단계를 더 거쳐야 하는 점이 불리하다.
신문을 보면서 제목에 나오는 단어인데도 모르는 어휘일 경우도 많았고, 다만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미국 학생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부분을 더 경험할 수 있는 면도 있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 미국에서 머물면서 벤처캐피탈에서 일을 했다고 들었는데 어땠나?
▲ 일부에서는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될 것으로 보도하기도 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벤처캐피탈리스트는 여러 가능성 중에 하나일 뿐이다.
한국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해오면서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크게 3가지로 정리해봤다. 첫째는 경영자의 자질, 둘째는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다. 산업구조가 대기업 위주로 되어 있어서 중소기업이 부가가치를 만들기 어렵다. 대기업의 인력파견업체 수준에 머물고 있다.
셋째는 벤처캐피탈이 개선할 부분도 많은 것 같다. 미국에서는 벤처캐피탈들이 투자한 회사들에 대해 매니지먼트를 지원하거나 비즈니스를 위한 컨택포인트를 제공하는 등 여러가지 도움을 주는데 비해 한국은 돈만 주고 그만인 경우가 많다.
이런 세가지 문제중에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는 나 개인이 어쩔수 없는 부분이지만 경영자의 자질이나 벤처캐피탈의 역량 강화 부분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벤처기업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정리되고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 앞으로의 진로는 어떻게 생각중인가?
▲ 좀더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지금은 잘 모르겠다. 벤처캐피탈리스트가 꼭 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매순간 열심히 살고 뭔가 결정을 해야 할때가 오면 꼭 가야할 길이 보이더라. 의대교수직을 버리고 백신회사를 만들때도 장기계획을 세워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의사일은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지만 백신개발은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처럼 팔순에도 환자를 보는 그런 의사가 될 줄 알았는데 그 길을 따라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 한 순간 의사를 그만둬야 할 때가 왔다. 앞으로도 계속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면 결정을 내려야 할때가 온다고 본다.
▲ 실리콘밸리의 작년 화두는 '웹 2.0'이었다. 그런데 작년 10월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은 안철수연구소 직원들도 그 개념을 잘 모르고 기자들도 마찬가지더라. 이상해서 기사를 검색해보니 기사로 다뤄진 적도 거의 없었다. 인터넷에서 모든 뉴스를 공유하는 시대인데 아직 사람들이 이런 걸 잘 모른다는 점에서 놀랐다. 여전히 정보의 격차가 존재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또 하나 놀란 것은 내가 웹 2.0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한 두달 사이에 웹 2.0 컨퍼런스도 열리고 상당히 빠르게 이 개념이 확산됐다. 이렇게 어떤 개념을 받아들이고 확산하는 속도는 한국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웹 2.0의 저변에는 '탈 권위주의'가 깔려있다. 개인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인 것이다. 얼마 전 본 인기 한국영화 '웰컴 투 동막골'도 그런 탈 권위주의를 보여주는 영화다. 386세대인 우리가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설정인데 인기를 모았다. 웹 2.0은 이런 시대적 흐름인 탈권위주의와 개인의 참여의식이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것이라고 본다.
소프트웨어 업계를 보면 소프트웨어의 3대 키워드는 아웃소싱, 오픈소스, SaaS(Software as a Service)다. 아웃소싱은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바꾸는 스케일로 이뤄지고 있다. 아웃소싱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조각 퍼즐처럼 짜맞춰지며 진행 중이다.
SaaS도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빌게이츠 회장이 10년전에 넷스케이프라는 프로그램이 나왔을때 사원들에게 e-메일을 돌려서 회사의 위기라고 말하고 회사의 방향을 바꿨었다. 최근에 다시 빌게이츠 회장이 구글 포털이 소프트웨어 서비스 플랫폼으로 나가고 있는 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위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인터넷 검색 서비스 회사가 소프트웨어 업체와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범위를 좁혀서 보안업계로 보면 보안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특정 대상을 공격하던 해커들이 바이러스가 나오면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격을 바꿨다.
이제 그 해커들이 특정 사이트만을 공격하는 식으로 또 방향을 틀었다. 다만 과거에는 일부 악명을 가진 해커들이 특정한 목적 없이 공격을 했다면 앞으로는 돈을 벌기 위한 해킹, 재무적인 공격이 많아질 것이다.
즉 1.25 사태처럼 보안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터지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사고처럼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패러다임 변화를 보고 새롭게 조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쉬면서도 정계 등에서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는데
▲ 인정해줘서 고맙지만 능력에 과분한 요청이었다. 능력은 없으면서 욕심을 부리면 본인도 고생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불행해진다. 능력이 부족하고 나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우선은 공부만 하고 싶다. 그러다가보면 앞서 말한 4개 진로 중 하나에서 길이 보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