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에 대해서는 아내의 종이 되자_광해군의 왕비 유씨의 상소문 :: 2006/04/18 09:52
“이는 나 같은 부녀(婦女)의 마땅히 알 것이 아니라 불과 쓸데 없는 휴지 한 장이로되… 변방 장수가 능히 적을 치지 못하므로 날같이 분완(憤?·분개하고 원망함)하여 반드시 등창이 나 죽을 것이니 더욱 통곡함을 더하리로소이다.”
조선시대 왕비가 남편인 왕에게 보낸 상소문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상소의 주인공은 광해군(光海君·재위 1608~1623)의 왕비 유씨(柳氏). 상소 내용은 남편의 정책이 잘못됐다며 조목조목 따끔하게 따지는 내용이다.
사적으로는 부부이지만 나랏일에 관한 부분만큼은 ‘신하’로서 ‘군주’에게 의견을 개진하는 공식적인 절차를 밟은 것.
임치균(林治均)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고전소설 전공)가 최근 찾아내 계간지 ‘문헌과 해석’에 공개한 이 자료는 숙종 때 나온 역사서 ‘조야기문(朝野記聞)’ 권9에 실린 것이다. 이 상소 내용은 공식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에도 빠져 있는 내용이다.
상소는 1622년(광해군 14년)에 씌어진 것으로 당시 광해군의 외교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당시 광해군은 명나라와 새로 일어난 후금(後金·청나라의 전신) 사이에서 어느 한 쪽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등거리 외교’를 펼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왕비 유씨는 “명나라에게도 죄를 입지 않으면서 오랑캐를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광해군 외교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은 뒤 “천하의 일은 한 곳에 전일하여야지 자칫하다가는 두 가지 모두를 잃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적은 병력으로 적을 물리친 송(宋)나라의 악비(岳飛)와 동진(東晋)의 사현(謝玄)처럼 중국 고사에 나오는 명장들의 사례를 일일이 짚은 뒤 “나라에서 진심을 다한다면 진정 죽을 각오로 싸울 장병들이 있다” “눈치를 보기보다는 대의명분을 따라 명나라를 도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유씨는 이 상소를 쓴 다음 해(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비가 된 뒤 강화도로 귀양을 떠나 병사했다.
임 교수는 “왕비 유씨의 상소문에서 해박한 지식과 당당한 유교적 가치관을 읽을 수 있다”며 “남편이자 왕인 광해군에게 자신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펼친 데서 조선시대 여인들의 기개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